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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킹 박사가 지구에 머물렀던 시간들은 인류에게 큰 축복
  •  우주로 떠난 ‘스티븐 호킹’ 그가 남긴 것
  • “시간은 빅뱅을 통해서 비로소 시작됐다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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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아인슈타인에 이은 천재적인 물리학자로 평가받아 
  • 20세기 과학사에 최대 탁월한 업적 남긴  ‘스티븐 호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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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개를 들어 하늘의 별을 올려다보라. 여러분이 보는 것이 무엇인지 이해하며, 무엇이 우주를 존재하게 하는지 궁금해 하고, 호기심을 가져라”

아인슈타인에 이은 천재적인 물리학자로 평가받은 스티븐 호킹이 우주로 떠났다. 호킹은 천체물리학 등 현대 물리학 연구에 몰두해 블랙홀, 빅뱅이론 등 20세기 과학사에 탁월한 업적을 남겼다. 그가 지구에 머물렀던 시간들은 인류에게 축복이었다.

루게릭병과 평생 싸웠던 천재 물리학자

아인슈타인에 이은 천재적인 물리학자로 평가받은 스티븐 호킹이 지난 3월 14일 향년 76세의 나이로 별세했다. 아인슈타인의 생일이기도 한 3월 14일에 숨을 거둔 호킹의 별세에 전 세계 애도의 물결이 이어졌다. 스티븐 호킹 박사는 1942년 1월8일 영국 옥스퍼드에서 프랭크 호킹과 이소벨 호킹 사이에서 태어났다. 그의 부모는 모두 옥스퍼드 대학교를 졸업한 수재로 알려졌다.

호킹도 1959년에 17세의 나이로 옥스퍼드대학교에 입학했다. 그는 옥스퍼드에 입학할 정도로 우수하지 않았지만, 놀라울 정도로 우수한 물리학 시험 성적으로 입학을 한 것으로 전해졌다. 호킹은 옥스퍼드대학에서 자연과학 분야의 학위를 받고 대학을 졸업한 뒤, 1962년 10월에 케임브리지 대학의 스키아마 교수와 우주론과 일반 상대성을 공부하기 위해 케임브리지 대학원에 진학해 상대론과 우주론을 본격적으로 연구하기 시작했다.

블랙홀

호킹이 유명해진 한 사례로는 1964년에 있던 공개강연에서 케임브리지 대학교의 저명한 천체물리학자인 프레드 호일을 공개적으로 비판하면서다. 촉망받는 젊은 과학자였던 스티븐 호킹은 21세에 루게릭병 진단을 받았으며, 당시 의사들은 그의 수명을 2년으로 시한부 선고했다. 운동신경원이 점점 손상되어가는 희귀병인 루게릭병 진단에도 그는 한 평생 병마와 싸워 이겨냈다.

그가 과학계에서 천재 물리학자로 추앙받는 이유는 현대 이론물리학에 탁월한 학문적 업적을 남겼기 때문이다. 호킹 박사의 대표적인 저서인 ‘시간의 역사’는 40개 국어로 번역돼 전 세계적으로 1100만부 이상이 팔린 것으로 집계됐다. 호킹은 아이작 뉴턴과 찰스 다윈이 잠들어 있는 영국 웨스트민스터 사원에 안치됐다. 영국 왕실 사원인 웨스트민스터 사원은 영국 왕의 대관식, 결혼식, 장례식 등 주요 행사가 열리는 장소이자, 영국 왕과 위인 등이 영면하고 있는 곳이다. 중력을 발견한 물리학자 뉴턴은 1727년 웨스트민스터 사원에 묻혔고, 진화론의 창시자 다윈은 1882년에 이곳에 안장됐다.

호킹은 무신론자로 알려졌으나, 웨스트민스터 사원측은 그가 무신론자인지 아닌지는 안치 여부 고려대상이 아니라고 밝혔다. 호킹은 1964년 제인 와일드와 결혼해 슬하에 3명의 자녀가 있다.

블랙홀

블랙홀·빅뱅이론 등 위대한 업적

스티븐 호킹은 상대성이론과 우주에 대한 독창적인 이론으로 잘 알려진 영국 과학자다. 스티븐 호킹이 21살에 루게릭병을 진단 받을 당시, 남은 시간이 2년 정도 밖에 없다는 말에도 상대성이론과 우주론에 대한 연구에 박차를 가했다. 그는 블랙홀에 적용되던 특이점(singularity, 블랙홀의 중심에 있는 밀도가 무한대인 점)을 우주 전체에 적용해 우주가 팽창하고 일반 상대성 이론이 맞다는 것을 전제로, 우주 전체가 하나의 특이점에서 탄생해야 한다는 이론을 수학적으로 증명하는 논문을 발표했다. 그는 이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으며, 이후 몇 년 동안에 같은 주제에 대한 연구를 더욱 심화·발전시켰다.

1972년부터 1975년까지 미국의 이론물리학자 킵 손과 러시아 물리학자 야코프 젤도비치와 토론을 하는 과정에서 호킹은 블랙홀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양자물리학과 상대성 이론을 부분적으로 결합해야 할 필요가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빅뱅

특히 블랙홀에 적용되던 특이점을 우주 전체에 적용한 이론은 학계에 새로운 바람을 몰고 왔다. 또한 블랙홀이 모든 물체를 삼켜버리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복사에너지를 방출한다는 호킹의 이론은 과학자로서 그의 가장 큰 업적으로 평가받고 있다. 블랙홀이 열 복사열을 방출한다는 사실을 밝혀낸 그는 ‘블랙홀 정보 패러독스’란 발표를 통해 자신이 주장하던 블랙홀 이론을 180도 뒤집으며 학계를 놀라게 했다.

박사는 블랙홀에 빨려 들어간 정보가 완전히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방출될 수 있다는 주장과 함께 블랙홀의 과거와 미래를 예측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사망 10일 전에는 “시간은 빅뱅을 통해서야 비로소 시작됐다고 할 수 있다”라는 말을 남긴 것으로 전해졌다.

빅뱅

이후 호킹은 양자 물리학과 상대성 이론의 부분적인 결합을 우주의 빅뱅에 적용해 빅뱅 초기에는 100톤이 넘는 무게를 지닌 작은 소립자들이 존재했다고 주장해 왔다. 호킹은 1975년에 케임브리지 대학교의 응용 수학 및 이론 물리학과의 교수가 되었으며, 1979년에 명예로운 루카스좌 석좌교수가 됐다.

스티븐 호킹의 또 다른 업적은 대중과학이라는 새로운 장르를 열어젖혔다는 것이다. 스티븐 호킹은 대중에게 친숙한 과학자였다. ‘시간의 역사’라는 대중 과학서를 발간해 일반인들이 과학적 지식에 보다 쉽게 접근할 수 있는 장을 만들었다. 이 뿐만 아니라, 미국 애니메이션 ‘심슨 가족’, 시트콤 ‘빅뱅이론’, 드라마 ‘스타트렉: 넥스트 제너레이션’ 등에 출연하며 과학자의 존재를 대중적으로 알리는데 기여했다.

2012년 런던 패럴림픽 개막식에 등장해 장애라는 것이 도전정신과 희망을 꺾을 수 없다는 메시지를 전달하며 전세계인에게 큰 감동을 주기도 했다.

젊을때 호킹박

또한 호킹은 자신의 논문을 아무런 대가 없이 무료로 공개하기도 했다. 자신이 24세에 발표한 박사학위 논문을 논문 공유 사이트 ‘아폴로’에 공개하며 “세계 어디에 있는 누구라도 위대한 연구를 제한 없이 접할 수 있어야 한다”는 말을 남겼다. 호킹은 위대한 과학자인 동시에 철학가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최근 그는 “AI가 인류 문학사 최악의 사건이 될 수 있다”고 경고했다. 한편으로는 인간이 200년 이내 다른 행성으로 이주해야 생존할 수 있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타계 보름 전 ‘마지막 논문’ 제출

살아생전 수많은 상을 받은 과학자가 생애 동안 노벨상을 받지 못한 이유에도 관심이 쏠리고 있다.

노벨상의 일반적인 기조가 처음 상이 제정될 때부터 인류 문명에 직접 기여한 데 수여하는 것으로 만들어 졌다. 따라서 스티븐 호킹의 훌륭한 업적에도 불구하고 실험을 통해서 직접 검증된 사례가 없어 노벨상을 받지 못했다고 학계는 관측하고 있다.

실험적 증거를 중시하는 노벨상 선정위원회의 특성상 이론물리학자들이 불리한 위치에 있기 때문이다. 아인슈타인은 유명한 상대성 이론이 아닌 광양자 가설로 노벨상을 받았으며, 힉스는 ‘힉스 입자’의 존재를 처음 제시한 뒤 50여년이 지나서야 노벨상을 수상했다.

이러한 가운데 호킹이 세상을 떠나기 2주 전 다중우주(평행우주)를 증명하기 위한 마지막 논문을 제출했다는 사실이 전해졌다. 논문의 제목은 ‘영구적 팽창으로부터의 부드러운 탈출’(A Smooth Exit from Eternal Inflation)이다.

호킹과 토마스 헤르토그 KU루벤대 교수가 공동집필한 이 논문은 지난해 7월 처음 제출됐으며, 이번 논문은 수정작업을 거친 것으로 알려졌다. 논문은 검토를 거쳐 저명한 과학저널에 게재될 전망이다.

아직 논문의 구체적인 내용은 공개되지 않았지만 우주 태초의 시간으로부터 남아있는 자연방사선을 측정해 다중우주의 존재를 파악할 수 있다는 것이 내용의 핵심으로 알려졌다. 학계는 논문이 입증된다면, 호킹의 가장 뛰어난 업적으로 남을 것이라고 관측하고 있다.

 

호킹박사가 남긴 어록 
 
  • "나는 죽음을 전혀 두려워하지 않는다. 그러나 또한 서두르진 않는다
  • "신은 존재할지 모른다. 그러나 과학은 창조자(창조주)의 도움 없이 우주를
  • 설명할 수 있다"
생전에 이렇게 말했던 세계 과학계의 큰 별 스티븐 호킹 박사가 향년 76세를 일기로 삶에 마침표를 찍었다. 고인은 그 극적인 생애의 크기와 깊이만큼이나 숱은 어록을 남겼다.

 '루게릭병'이라는 역경을 이겨내고 상상 이상의 족적을 남긴 고인의 '말말말'은 꼭 과학 계통뿐 아니라 모든 인생의 구석구석을 아우를만한 나침반 같은 것이었다. 특히 고인의 삶 자체가 주는 흡입력이 컸기에 그의 어록은 사람들의 마음을 빨아들이는 '블랙홀'처럼 작용하기도 했다.
 
역대급 천재로 기억되는 고인은 먼저, 지능을 다른 각도에서 정리했다. 그에게 지능은 "변화에 적응할 수 있는 능력"이었다. 그는 "내 아이큐가 몇인지 모르겠다. 자기 아이큐를 뽐내는 이들은 모두 루저들"이라고도 일갈했다.

블랙홀 이론을 제고한 천체물리학의 대가답게 사람들에게 "고개를 들어 별들을 보라"고 조언했다. 제발 "당신 발만 내려다보지 말고." 과학과 신학의 영역을 넘나드는 통찰적 언명과 지식인의 겸양을 현시하는 언급도 많았다.

 "신은 존재할지 모른다. 그러나 과학은 창조자(창조주)의 도움 없이 우주를 설명할 수 있다"라는 것이 대표적이다.또 "신은 가끔은 주사위를 안 보이는 곳으로 던진다"고 했고, "내가 우주에 대한 우리의 지식에 뭔가를 보탰다면, 나는 그것으로도 행복하다"고 했다.

 
호킹박사의 결혼식
           인류의 진화에 관한 간명한 주장도 많이 회자한다. "우리는 매우 평균적인 별의 한 소행성에서 원숭이들이 진화한 종족일 뿐이다. 그러나 우리는 우주를 이해할 수 있다. 그것이 우리를 매우 특별한 무엇으로 만든다." 그러나 그의 어록 중 가장 큰 공감을 주는 건 뭐니뭐니해도 인생에 관한 것이다. 20대부터 희소병을 앓는 그는 "비록 내가 움직일 수도 없고, 컴퓨터를 통해야만 말할 수 있다고 해도 나의 마음속에서 나는 자유롭다"고 했다.

 "세상에 완벽한 것은 없다"고 단언하던 호킹은 "여성들, 그들은 하나의 복잡한 미스터리"라고도 했다. 낙천적 기질과 유머도 있었던 고인은 "인생은 웃기지 않으면 비극일 것"이라고 했다. 장애인들에게도 그의 촌철살인은 이어졌다.  "당신이 장애가 있더라도 잘할 수 있는 것에 집중해라. 장애 탓에 못 하는 것들이 있어도 너무 유감스럽게 생각 마라." 그러나 무엇보다도 철두철미 지식인이었던 그의 앎에 대한 태도는 후학들에게 깊은 울림을 준다.

 "지식(앎)의 가장 큰 적(敵)은 무지(또는 무식)가 아니라, 기존 지식이 주는 환상이다."
 

유아연 본지 미주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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