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백
HOME Special Science Blog
우리나라는 왜 노벨상 수상자가 안나오나?
  • 출처 : 장부승 간사이외국어대 교수 페이스북 글
  • 승인 2019.01.18 09:54
  • 댓글 0

우리나라에는 왜 노벨상 수상자가 안나오나?

일본에서 노벨상 수상자가 많이 나오는 진짜 이유는 ‥…

                                                                        ※이 글은 장부승 간사이외국어대 교수가 페이스북에 올린 글입니다. 
 

이번 내일신문 칼럼은 국제정치나 외교문제에서 한 발짝 뒤로 물러서서 노벨상을 다뤄봤습니다. 일본의 노벨상이죠. 매년 10월은 노벨상의 달입니다. 매년 10월만 되면 하도 호들갑을 떨어 대서 정말 어떤 때는 보기가 싫을 정도입니다. 그래서 올해만큼은 10월이 가기 전에 한 번 이 문제를 꼭 짚고 넘어가 보고 싶었습니다. 
 
10월만 되면 항상 희망은 실망으로 끝납니다. 그리고 선망으로 이어지죠. 우리나라 사람이 혹시나 노벨상을 받지 않을까 하다가 못 받고, 옆 나라 일본에서는 계속 수상 소식이 이어집니다. 올해도 생리의학상 수상자가 나왔고 2000년 이후로만 벌써 18명째입니다. 2000년 이후만 따지면 미국에 이어 2위입니다. 분야도 다양합니다. 전체 23명도 물리학 11명, 화학 7명, 생리의학 5명으로 분야별로 골고루 배분되어 있습니다. 

왜 일본에 저리도 노벨상 풍년이 나는지 반대로 왜 우리는 도대체 하나도 없는지 벌써 몇 년째 분석 기사들이 판을 칩니다. 대답은 하나같이 천편일률이죠. 대략 다섯 가지 답변들이 형태만 바꿔가며 무한반복됩니다. 

첫째, 일본은 과학 연구에 우리보다 오랫동안 더 많은 투자를 해왔다. 
둘째, 일본은 기초과학을 중시하는데, 우리나라는 응용 연구에 치우쳐 있다. 
셋째, 일본의 연구자들에게는 맘 놓고 연구할 수 있는 안정적인 연구환경이 주어진다. 
넷째, 일본은 서양 연구진들과 네트워크가 잘 되어 있어서 연구성과 홍보를 잘 한다. 
마지막으로 일본의 과학자들에게는 장인 정신이 있다. 일본이라는 나라에는 오타쿠 문화라는 것이 있어서 한 가지만 파고 들기 때문이다. 

 

그런데 말입니다. 매년 반복되는 이 설명들을 듣다 보면 뭔가 이상하지 않으세요? 

이 중 몇 가지는 별로 어려워 보이는 해법들이 아닌데, 그렇게 간단하고 쉬우면 왜 우리는 못하죠? 일본에서 노벨상 수상자가 폭증하기 시작한 것이 벌써 19년째인데. 왜 일본은 하는 것을 우리는 지난 19년 동안 못했을까요? 우리도 기초과학에 투자 많이 하고, 연구자들에게 안정적 연구환경 보장해 주고, 서양 연구자들과 네트워크 잘 하고 그러면 되는 것 아닙니까?  

아니면 혹시 우리가 뭔가 헛다리를 짚고 있는 것은 아닐까요?  그래서 한 번 팩트 체크부터 해봤습니다. 

세계은행 데이터를 이용해서 지난 20년간 우리나라와 일본을 포함해, 미국, 영국, 독일, 프랑스의 연구 투자를 비교해 봤는데, 놀라지 마십시오. 우리가 거의 최고입니다. GDP 대비 R&D 투자는 2015년도에 우리가 4.2%입니다. 압도적 1위입니다. 일본보다 GDP 대비 1%가 높습니다. 우리 GDP를 대략 1천5백조원으로 친다면 4%만 해도 60조원입니다. 우리나라는 1년에 적어도 60조원 이상을 연구개발비로 쓰고 있는 겁니다. GDP 대비로 봤을 때 다른 주요국들은 대개 2%대이고, 영국은 2%도 못 됩니다. 

인구 1백만명당 연구개발 인력도 2014년도에 우리가 일본보다 1천5백명이 많고, 영국, 독일 등보다는 거의 3천명이 더 많습니다. 우리가 거의 7천명에 육박하는데, 영국, 독일은 4천명대 초중반이니까요. 

과학기술 분야 논문은 우리가 2016년에 연간 약 6만편을 발표했는데, 프랑스와 비슷한 규모입니다. 영국, 독일, 일본은 모두 약 10만편 정도입니다. 이것은 사실 엄청난 수치입니다. 이들 국가들이 모두 우리보다 인구도 많고 경제규모는 2배 내지 4배가 더 크다는 것을 생각해야 합니다. 대학 숫자도 이들 국가들이 더 많습니다. 우리나라 대학이 현재 2백여개인데, 일본에는 대학이 거의 770개 전후로 있습니다. 

게다가 더 놀라운 사실은 우리의 연구개발 투자, 연구개발 인력, 과학기술 분야 논문편수 모두 지난 20년간 엄청난 속도로 증가해왔다는 겁니다. 연구비와 인력은 대략 지난 20년간 거의 3배로 증가했습니다. 거의 매년 5% 내외의 속도로 고속 성장해 왔습니다. 주요 국가들중 다른 어떤 나라도 이런 속도를 보이는 나라가 없습니다. 

최소한 데이터를 놓고 본다면 대한민국이 일본이나 다른 주요 국가들에 비해 과학 연구를 등한시하고 있다는 것은 사실이 아닙니다. 
그러면 우리나라는 기초과학을 외면하고 응용과학에 치중하고 있는 건가요? 반대로 일본은 기초과학에 치중하고 있기 때문에 노벨상 수상자가 많은 걸까요? 

우선 무엇이 기초연구이고 무엇이 응용연구인지 나누는 것이 사실 생각만큼 그리 쉬운 일이 아닙니다. 공대에서 하면 응용이고, 자연과학대에서 하면 기초입니까? 응용연구에 비해 기초연구 투자가 얼마나 되는지는 그래서 사실 통계를 만들기도 쉽지가 않습니다. 

한 가지 재미있는 것은 응용연구에 치중한다는 비판은 사실 일본 과학계가 수십년동안 귀에 못이 박히게 들어온 비판입니다. 당장의 제품 생산에 도움이 되는 기술 개발에만 집중하다 보니 기초연구나 이론 연구를 소홀히 하고 있다, 이런 비판을 일본 과학계가 수십년동안 받아왔던 거죠. 

2015년도에 발표된 유네스코의 보고서를 보면, 일본에서 2000년도 이후 노벨상 수상자가 많이 나오고 있는 이유중 하나로서, 노벨상 선정 기준이 바뀌었을 가능성을 지적하고 있습니다. 노벨위원회가 선정기준을 발표하지는 않지만, 수상 결과의 추세를 놓고 봤을 때, 2000년도를 전후해서 노벨상 선정위원회가 이론적 측면 못지않게 실제 인류의 생활에 얼마나 영향을 미쳤냐를 중요한 기준으로 도입했고, 이것이 실용성을 강조하는 일본의 학문 풍토에 유리하게 작용했다는 것입니다. 일본이 다른 나라에 비해 기초연구를 중시하기 때문에 노벨상을 많이 탄다는 얘기는 최소한 이 보고서에는 없습니다. 

실제로 일본인 노벨상 수상자들의 면면을 보면 정말 순수하게 이론적인 측면만 파고드는 사람도 있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도 있습니다. 2015년 생리의학상 수상자인 오무라 사토시 교수는 민간기업과의 산학연구 모델을 만들어서 150억원의 연구비를 확보했고, 4백 병상이 넘는 병원까지 지었습니다. 정말 그야말로 순수하기만 한 연구이면 이 정도로 민간기업의 투자를 확보할 수 있을까요? 

일본은 전통적으로 국가 전체 연구개발 지원비에서 정부 예산이 차지하는 비중이 낮습니다. 1990년대까지 대략 매년 30% 정도 밖에 안됐죠. 이 비율을 더 올려야 된다는 의견이 줄기차게 나올 정도입니다. 정부 투자 이외에 나머지는 민간 부문에서 옵니다. 그러면 일본 연구자들은 자신의 연구 목적과 방법과 예상 성과가 무엇인지를 민간 부문 스폰서들에게 설명하고 연구비를 확보해야 합니다. 이것이 기초연구를 중시하는 나라의 과학계의 풍경인가요? 

그러면 혹시 연구 환경 때문일까요? 연구 환경은 정량적으로 평가하기가 쉽지가 않습니다. 해서 일본인 교수님들께 직접 여쭤봤습니다. 

저희 학교는 사립대학입니다. 일본은 국립대에서 오래 계셨던 분들이 은퇴 후 혹은 은퇴 직전에 사립대로 옮기는 전통이 있습니다. 일본에서 사립대는 정년 규정이 느슨합니다. 재단에서 결정만 하면 계약직 교수로 정년을 넘어서 임용할 수도 있습니다. 그렇게 해서 사립대에서 10년 내지 15년 정도 더 근무하시는 거죠. 

저희 학교에도 일본의 전통 명문인 동경대, 교토대 내지 다른 명문 국립, 사립대에서 30년 이상 근무하신 분들이 꽤 계십니다. 그것도 제가 있는 본관 7층과 바로 아래층 6층에 집중 포진해 계시죠. 잘은 모르지만 학교 차원에서 아마 원로 교수님들을 모두 본관 6, 7층에 모아 두는 무슨 방침이 있나 봅니다.  

제가 만나본 일본인 교수님들은 모두 일본의 연구 환경이 좋아서 노벨상이 많이 나온다는 의견에 선뜻 동의를 안 하셨습니다. 

"연구비? 글쎄 별로 풍족했다고 보기는 좀…. 그리고 그 노벨상 받은 사람들 내가 개인적으로도 잘 아는데, 그 사람들 연구비랑 관계없이 연구하는 사람들이에요. 매일 정시에 나와서 마치 세상 모든 것을 잃어버리기라도 한 사람처럼 오로지 연구에만 몰두하지. 하루종일. 친구도 별로 없고, 취미도 없어. 그렇게 단조롭게 연구만 하면서 30년, 40년 살아오는 거야. 아마 그 친구들 연구비가 없다 해도 똑같은 패턴으로 계속 살 걸."

일본의 연구환경에 대해서 일본인 원로 교수님들은 오히려 걱정이 많으셨습니다. “연구환경이 안정적이어서 마음 놓고 아무거나 자기 하고 싶은 것 연구할 수 있었다? 글쎄요. 그런 날이 언제 올까요?”라고들 하시더군요. 연구환경이 좋아서 노벨상이 많이 나온다는 주장에 대해 일본인 교수들이 아무도 동의를 안 했습니다. 

게다가 일본인 노벨상 수상자들은 23명 전원이 단 한 명의 예외도 없이 국공립대 출신들입니다. 그리고 대부분이 일본 국내의 국공립대에서 연구를 수행했습니다. 만약 연구환경이 일본에 노벨상 수상자가 많은 결정적 이유라고 한다면 일본의 국공립대와 사립대간에 뭔가 결정적인 연구환경 상의 차이가 있어야겠죠. 

하지만 제가 대화를 나눠본 교수님들 다수가 국공립대랑 사립대 양쪽 다 잘 아시는 분들이었는데, 다들 고개를 갸우뚱했습니다. 국공립대와 사립대 간에 연구환경에 근본적인 차이는 없다는 겁니다. 오히려 사립대가 봉급은 30% 정도 더 주고 요즘이야 안 그렇지만 과거에는 사립대가 정년도 더 길게 보장됐었다는 겁니다. 

연구환경도 아니면, 일본 과학자들이 외국 과학계와 네트워크가 좋기 때문일까요? 뭐 그럴지도 모르죠. 

그런데 말입니다. 여기서 한 가지 주목할 점이 있습니다. 일본의 노벨상 수상자들은 거의 전부가 국내파들입니다. 대부분 유학 경험이 없어요. 나중에 연구자로서 다 크고 나서 연수는 잠깐 가곤 합니다. 하지만 자기의 학문적 뿌리는 어디까지나 일본입니다. 일본에서 태어나서 일본에서 자라고 대학 나오고 박사 따고 일본 연구기관에서 나중에 노벨상을 받게 되는 업적을 이루어 낸 겁니다. 이러다 보니 대부분 영어 실력이 별로입니다. 어떤 분들은 정말 형편없는 경우도 많습니다. 심지어 역대 일본인 노벨상 수상자 중에는 영어를 한 마디도 못하는 사람도 있었습니다. 

아시다시피 우리나라는 대부분의 주요 대학 교수들이 미국, 영국의 명문 대학 박사들입니다. 과연 누가 해외 네트워크가 더 좋을까요? 

마지막으로 장인 정신인데요. 사실 일본인들 중에서도 일본 특유의 장인 정신 때문에 일본인들이 노벨상을 많이 받는다고 믿는 사람들이 적지 않더군요. 뭔가 한 가지에 깊이 파고드는 소위 오타쿠 문화 때문이라는 거죠. 

그런데 말입니다. 그게 만약 장인 정신이나 오타쿠 문화 때문이라면, 그런 문화라는 것이 어제 오늘 갑자기 생긴 것이 아닐텐데, 왜 갑자기 2000년도부터 노벨상 빅뱅이 시작된 걸까요?

노벨상은 1901년도부터 수여가 시작됐습니다. 1901년도부터 1999년까지 99년동안 일본인 중에 과학으로 노벨상을 탄 사람은 5명에 불과합니다. 그런데 2000년에서 2018년까지 19년동안 무려 18명입니다. 왜 그 장인 정신이라는 것이 99년동안 숨어 있다가 19년전에 갑자기 기지개를 편 것일까요?

그리고 노벨상에 그 장인 정신이라는 것이 필수적이라고 하면, 도대체 그 장인 정신은 왜 지난 120년간 주로 미국, 영국, 독일, 프랑스에만 몰려 있던 겁니까? 왜 서유럽과 북미 지역에만 몰려 있습니까? 왜 그 장인 정신이 그토록 특정 국가들, 특정 지역들에서만 발현되죠? 

전혀 설명력이 없을 뿐만 아니라 우리나라를 비롯해서 많은 소규모 국가 연구자들에 대한 모욕입니다. 상대적으로 작은 나라에서 연구하는 연구자들은 그럼 연구에 임하는 태도가 철저하지 못하다는 말인가요?  

기존에 한국 사회와 언론 지상에 횡행하는 일본에 노벨상 수상자가 많은 다섯 가지 이유라고 하는 것이 하나 하나 따져 보면 들어 맞는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사실 일본이 왜 그리도 노벨상을 많이 받는지를 알려면 우선 노벨상을 많이 받는 다른 나라들을 봐야 합니다. 그리고 노벨상을 많이 받는 나라들의 공통점이 무엇인지, 그리고 노벨상을 못 받는 나라들과 많이 받는 나라들의 차이점이 무엇인지를 봐야죠. 일본만 들여다 봐서는 제대로 된 답이 안 나옵니다. 

지난 118년의 노벨상 역사를 통틀어 전체 과학 계열 수상자의 3분의 1은 미국에서 나왔습니다. 그리고 또 다른 3분의 1은, 영국, 독일, 프랑스에서 나왔습니다. 쉽게 말해 이 네 나라가 전체 수상자의 3분의 2를 배출한 겁니다. 이 4개 나라는 바로 지난 120년간 세계 자본주의 경제의 상위 4개 국가들이기도 합니다. 

지역으로 나누어서 분석을 해보았습니다. 서유럽과 북미 지역이 역대 노벨상의 80%를 가져갔습니다. 동유럽을 포함하면 90%입니다. 그러니까 쉽게 말해 노벨상이라고 하는 상은 지난 120년간 유럽과 북미 지역 연구자들의 놀이터였습니다. 처음으로 유럽과 북미 이외의 지역에서 이 아성을 깬 것이 일본인 것이죠. 

그렇다면 우리가 던져야 할 올바른 질문은 ‘왜 지난 120년간 노벨상이 몇몇 국가 내지는 몇몇 지역에 의해 독점되어 왔는가?’, ‘2000년대 들어 갑자기 그 독점의 틈바구니를 일본이 비집고 들어갈 수 있었던 이유는 뭔가?’가 되어야 합니다. 

왜 대규모 자본주의 경제 국가들이 노벨상을 싹쓸이할까요? 노벨상을 받을 만한 업적이 나오려면 장기간에 걸쳐 꾸준한 투자와 관심이 필요합니다. 그리고 이것은 누군가 연구자가 골방에 틀어 박혀서 혼자 하는 그런 공부가 아닙니다. 특정 세밀한 전문 분야 전공자들이 다수가 모여서 한 가지 주제를 놓고 장기간에 걸쳐 활발하게 교류하고 협력을 해야 합니다. 능력 있고, 특정 분야에 높은 관심을 가진 사람들이 여럿 모여 앉아서 하나의 팀이 되어 서로 돕기도 하고 비판하기도 하면서 동일 주제에 대해 반복적으로 장기에 걸쳐 새로운 발견을 위한 시도를 거듭하는 것. 이것이야 말로 새로운 과학적 업적 창출을 위한 가장 중요한 조건입니다. 

이러한 조건을 충족시키려면 대규모 고등연구기관 혹은 그런 기관들로 구성된 연구 클러스터가 조성되어야만 합니다. 다수의 전문가들을 지리적으로 압축적인 공간 속에 대규모로 밀어 넣어야 한다는 겁니다. 

그리고 그것이 하나만 가지고는 안됩니다. 연구기관 간의 경쟁과 교류가 필수적이니까요. 대규모 고등 연구기관의 클러스터가 복수로 있어야 합니다. 

이걸 복수로 확보하려면 장기간에 걸쳐 막대한 인적, 경제적 투자가 필요합니다. 그 정도 투자를 감당할 수 있는 나라가 전세계에 몇 나라 안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소수의 대규모 인구-경제 국가들이 노벨상을 싹쓸이하는 가장 큰 이유입니다. 

실제로 미국을 보면 1994년에서 2014년간 가장 많은 노벨상 수상자를 배출한 학교가 3개 있습니다. UC버클리, 콜럼비아 대학교, 그리고 MIT입니다. 이것은 노벨상 수상자들의 박사학위 취득 대학, 노벨상을 받은 업적을 산출했을 당시의 소속 기관, 노벨상을 받을 때의 소속 기관 세 가지 기준을 종합적으로 적용해 봤을 때 그렇다는 것입니다. 그 종합 3위가 이 3개 대학교들입니다. 

그런데 흥미로운 것은 바로 이 세 대학교가 미국의 3대 고등연구 클러스터를 대표하고 있다는 겁니다. UC버클리는 캘리포니아를 중심으로 하는 서부 클러스터, 콜럼비아 대학교는 뉴욕을 중심으로 하는 동부 클러스터, 그리고 MIT는 보스턴을 중심으로 하는 북동부 클러스터의 중심 역할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일본은 이미 1967년에 영국, 독일, 프랑스를 제치고 세계 제2위의 경제대국이 되었습니다. 이 지위는 2010년도에 중국에게 2위 자리를 내주기까지 무려 43년간 유지됩니다. 1980년대에 가면 일본의 GDP는 미국의 절반을 돌파하게 됩니다. 1995년이 되면 달러화 경상가격 기준으로 일본 경제규모가 미국의 70%를 넘어서게 됩니다. 일본의 인구가 미국의 절반도 안되고 땅 넓이는 캘리포니아 주보다 작다는 것을 감안하면 이것은 엄청난 성과입니다. 일본 경제의 전성기에 일본 경제의 규모는 독일의 2배를 넘었고, 영국과 프랑스를 합친 것보다 2배였습니다. 중국이 미국을 아무리 많이 따라잡았다 해도 2017년 기준으로 아직 중국 경제는 미국의 63% 밖에 안됩니다. 

쉽게 말해 지난 반세기의 일본 경제를 돌아보았을 때, 경제규모 면에서 일본은 복수의 대규모 고등연구 클러스터를 만들어낼 힘을 갖고 있던 겁니다. 

실제로 일본의 노벨상 수상자들은 대부분이 동경대, 동경공업대, 동경이과대를 중심으로 하는 관동 클러스터, 교토대, 오사카대를 중심으로 하는 관서 클러스터, 그리고 나고야대를 중심으로 하는 중부 클러스터의 세 군데에서 나왔습니다. 그 분포도 어느 한 쪽 클러스터에 치우치기보다는 비교적 비슷합니다. 미국에 3대 고등연구 클러스터가 있는 것처럼 일본에서는 이 세 개의 클러스터가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면서 일본의 과학연구를 이끌고 있는 3두마차입니다. 

그리고 이 세 개의 클러스터는 일본에서 가장 커다란 세 개의 산업 중심과 정확히 일치하고 있습니다. 지역총생산 기준으로 일본에서 가장 큰 지방 단위는 단연 동경도입니다. 그 다음이 오사카부 그리고 3위가 바로 나고야시가 위치한 아이치현입니다. 세 개의 고등연구 클러스터와 세 개의 산업 중심의 위치가 정확히 겹치고 있는 것입니다. 

미국, 영국, 독일, 프랑스가 지난 120년간 노벨상의 대부분을 가져갈 수 있었던 가장 중요한 이유가 바로 이러한 대규모 고등연구 클러스터를 만들어냈기 때문이고, 또한 일본이 2000년도 이후 이들 4개국가들을 추월하거나 혹은 어깨를 나란히 하게 된 것 역시 일본이 미국, 영국, 독일, 프랑스가 해낸 것처럼 복수의 대규모 고등 연구기관 클러스터를 만들어내는 데 성공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왜 2000년대 이후에나 와서야 갑자기 일본의 노벨상 수상자가 폭증한 것일까요? 사실 이것은 놀라운 것이 아니라 당연한 것입니다. 경제규모가 커졌다고 해서 고등연구 기관이 바로 생겨나고 과학적 업적을 쏟아내지는 않습니다. 경제 규모가 과학 연구기관으로, 업적으로 반영되는 데는 시간이 걸립니다. 

실제로 미국의 사례를 보면, 대략 1920년대경에 세계 최대 규모의 경제를 갖게 됩니다. 그러나 누적 기준으로 독일을 제치고 노벨상 수상자가 세계 1위에 도달하는 것은 1956년입니다. 그리고 1956년은 노벨상 수상자의 수상 당시 국적을 기준으로 계산한 수치입니다. 출생지를 기준으로 미국인 수상자를 계산했을 때는 1965년이 되어야 비로소 전체 과학 분야 미국인 노벨상 수상자의 누적 총합이 독일을 넘어서게 됩니다. 미국 국적 노벨상 수상자의 상당수가 사실은 2차대전을 피해 유럽에서 건너온 유럽 출신 학자였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1993년이 되어서야 비로소 물리학, 화학, 생리의학상 3개 개별 분야 모두에서 미국인 출신 노벨상 수상자 숫자가 각각 1위를 차지하게 됩니다. 전분야에서 미국이 1위가 되는 것이죠. 

바꿔 말하자면 국적 기준을 적용했을 때, 미국이 세계 최대 경제를 가진 국가가 되고 나서도 약 30년 후에야 세계 최대 노벨상 배출 국가가 되었고, 출생지 기준을 적용하면 40년이 걸렸습니다. 그리고 전 분야에서 1위를 차지하게 되는 데는 무려 70년 정도가 걸린 것입니다. 

일본이 경제 규모 면에서 세계 2위 국가가 된 것이 1967년입니다. 2000년 이후만을 계산했을 때 세계 2위의 과학 분야 노벨상 배출 국가는 일본입니다. 그러나 아직도 노벨상 역사 전체를 통틀어 총 누적 기준으로 세계 2위의 노벨상 배출 국가는 영국(103명)입니다. 일본은 독일(89명), 프랑스(37명) 보다 뒤지는 5위입니다 (22명, 2016년 기준). 누적 기준으로 봤을 때, 일본은 아직도 자신의 경제규모에 걸맞는 노벨상 수상 규모 순위를 얻지 못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서방 국가들이 앞서 나갔던 지난 120년의 역사를 뒤집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겠죠. 

하지만 일본이 3개 고등연구 클러스터를 완성했고, 이들이 연구 업적을 산출하기 시작했으며, 이들 업적들이 세계적으로 인정받기 시작한 이상, 앞으로 일본 경제의 세계 순위가 갑자기 폭락하거나 이들 연구 클러스터들이 갑자기 기능 부전에 빠지는 이변이 발생하지 않는 한, 일본의 노벨상 빅뱅은 앞으로도 계속되어 수십년내로 서방 국가들을 따라잡게 될지 모릅니다. 

일본의 노벨상 빅뱅이 우리에게 던지는 수수께끼는 사실 몇 가지 더 있습니다. 가장 흥미로운 것은 왜 일본의 노벨상 수상자들이 대부분 국내파냐는 겁니다. 대학 학부도 일본에서 나오고 박사도 일본에서 따고, 노벨상을 받게 되는 업적도 일본에서 이뤄낸 것입니다. 대학교 교수라고 하면 대부분이 해외에서 공부하고 오는 것이 상례인 우리나라의 눈으로 보기에는 이것이 수수께끼처럼 보일지 모릅니다. 

하지만 세계적 기준으로 보면 이것은 하나도 이상한 것이 아닙니다. 1994년에서 2014년간 21년치 노벨상 수상자를 전수 조사한 독일 막스 플랑크 연구소의 연구 결과에 따르면, 노벨상 수상자들은 생애를 통틀어 여러 연구기관을 오가지만 나라는 잘 안 바꿉니다.  

막스 플랑크 연구소의 연구는 모든 노벨상 수상자들의 박사 학위 취득 당시의 소속 기관, 노벨상을 받게 되는 업적을 산출했을 당시의 소속 기관, 노벨상을 받았을 당시의 소속 기관의 세 시점을 파악해서 이 세 시점의 소속 기관들이 같았는지 달랐는지를 검토해 봤습니다. 

결과는 놀라웠습니다. 이 세 소속기관이 모두 같은 경우는 전체의 10%에 불과했습니다. 반면, 세 소속기관이 모두 다른 경우는 36%나 되었습니다. 셋 중 하나라도 다른 경우가 54%였습니다. 노벨상 수상자들의 연구기관간 이동성을 조사한 다른 연구 결과들을 보아도 전반적으로 노벨상 수상자들은 소속 연구기관을 바꿔 가며 연구하는 경향이 강했습니다. 연구자들의 이동성이 매우 높은 것입니다. 

반대로 앞서 막스 플랑크 연구소 연구에서 노벨상 수상자들이 나라를 바꿔서 다른 연구기관으로 옮긴 사례를 확인해 보니 전체 수상자의 77%가 한 나라에서만 쭉 연구를 했습니다. 바꿔 말하자면 노벨상을 받는 과학자들은 주로 한 나라 안에서 서로 다른 연구 클러스터 간에 자리를 옮겨 다니며 연구한다는 것입니다. 

이 연구는 창의적인 연구의 근원이 어디에 있는 것인지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서로 분리 독립된 연구 클러스터들은 자기들만의 독자적인 시각과 연구자 양성 체계를 갖게 됩니다. 연구자가 한 연구 클러스터에서 다른 곳으로 옮기게 되면 그는 새로운 시각, 새로운 방법론을 가진 새로운 사람들을 접하게 됩니다. 이렇게 같은 분야에 속하지만 서로 다른 시각과 방법론을 가진 사람들이 뒤섞일 때 뭔가 새로운 시각이 나올 가능성이 높아지는 것입니다. 

그러나, 변화의 추구는 국경을 넘어가지는 않습니다. 나라를 바꿔서 완전히 다른 문화권, 언어권으로 옮기게 될 경우에는 자칫 득보다 실이 클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연구자들간 긴밀한 의사소통이 창의성의 중요한 기반 중 하나이기 때문입니다. 

일본의 노벨상이 제기하는 또 하나의 수수께끼는 왜 일본의 노벨상 수상자들은 100%가 국공립대 출신이냐는 겁니다. 이에 대해서는 일본 내부적으로도 의견들이 분분하더군요. 

혹자는 국공립대가 학비가 싸서 가난한 인재들이 많이 몰리기 때문이라고도 합니다. 실제로 일본의 노벨상 수상자들의 출신 고등학교를 보면, 대부분이 대도시 명문 사립고 출신들이 아니라 지방 소재 현립 고등학교 출신들입니다. 한 마디로 시골에서 올라온 수재들인 겁니다. 

또 어떤 분은 국공립대 입시가 사립대 입시에 비해서 시험 과목이 많고 암기 과목도 많기 때문에 국공립대 학생들이 지식량이 많고 더 종합적인 시각을 갖게 되기 때문이라고 분석하기도 합니다. 

전 그런 의견에 동의하지 않습니다. 이 문제는 사실 전후 일본이 고등 연구와 교육 기관을 재건하려고 할 때, 당시의 대학 행정을 책임졌던 사람들의 관점에서 생각해 본다면 의외로 쉽게 풀리는 의문입니다. 

2차대전 당시 일본은 전국토가 미군의 철저한 폭격에 의해 만신창이가 됩니다. 2차례의 원자탄 공격과 그보다 훨씬 많은 대규모 소이탄 융단폭격으로 인해 대부분의 일본 대도시들은 단 하나의 예외, 교토만을 제외하고 모두 잿더미가 됐다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교토는 당시 미국의 전쟁장관 헨리 스팀슨의 강력한 반대로 인해 폭격 대상에서 제외됩니다.) 

전후 일본이 경제 재건에 나서면서 고등교육과 연구의 기관들도 재건되어야 했습니다. 당신이 당시 일본의 고등교육과 연구 행정의 책임을 지고 있는 사람이라면 재건을 위해 제한된 투자자원을 배분할 때 그 우선순위를 어떻게 정했을까요? 당연히 투자효율이 가장 높은 곳에 투자 우선순위를 두었겠죠. 

전쟁전에 일본은 고등교육과 학술 진흥을 위해 제국의 판도 안에 9개의 제국대학을 설립하고 이들 연구기관들에 집중적으로 투자합니다. 그 중 7개가 일본 열도 안에 그리고 2개가 일본 열도 밖(서울과 타이뻬이)에 있었습니다. 

당시 제국 대학은 일본 사회의 엘리트 코스의 상징이었으며, 교수진과 학생 모두 당시 일본 사회의 최고 엘리트들로 구성되어 있었습니다. 전쟁과 패전의 후유증으로 고등교육과 연구의 기반이 파괴되었지만, 그 인적 자산과 명성은 그대로 남아 있었습니다. 그렇다면 아주 당연하게도 여전히 높은 수준의 연구를 위한 인적 자산이 상대적으로 가장 많이 남아 있는 곳으로 전후의 복구 과정에서 인적, 물적 투자가 집중적으로 갈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실제로 일본의 노벨상 수상자들을 많이 배출한 동경대, 교토대, 나고야대, 오사카대는 모두가 구 제국대학들 중에서도 규모가 큰 대학들입니다. 

그리고 그러한 집중적인 투자는 다시 기존의 명성을 재강화하여 유능한 인재들을 더욱 더 국공립대로 끌어 당기는 효과를 낳게 됩니다. 이런 과정을 생각해 본다면 일본의 노벨상 수상자들이 국공립대에서만 나오고 있는 사정이 그리 이해하기 어려운 것이 아닐 수도 있습니다. 

이상의 분석이 우리에게 주는 교훈은 세 가지입니다. 

첫째, 노벨상을 원한다면 복수의 고등 연구 클러스터를 만들어야 합니다. 

한국전쟁 이후 각고의 노력 끝에 우리는 이미 1개의 고등 연구 클러스터를 만들었습니다. 서울대를 필두로 하는 서울 중심의 연구 클러스터입니다. 실제로 서울 지역 유명 대학교의 교수들을 현미경을 대고 들여다보면 세계 수준에 손색이 없는 뛰어난 연구자들이 많습니다. 논문도 많이 내고 여러 학회에서 왕성하게 활동합니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부족합니다. 서울 클러스터 이외에 그와 독립되어 그에 필적할만한 대규모 고등연구 클러스터가 최소한 하나 더 필요합니다. 이 2개 이상의 클러스터가 서로 경쟁하면서 협력하는 구조가 만들어진다면 노벨상 수상자를 배출하기 위한 가장 중요한 조건이 갖추어진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현재 한국 경제의 규모는 영국이나 프랑스 경제의 대략 60% 정도 됩니다. 지난 1백여년 동안 영국과 프랑스가 쌓아온 연구 자원과 역량 등 제도적 유산을 감안한다면 그 격차는 훨씬 더 클 것입니다. 

우리의 제한된 능력을 놓고 봤을 때 과연 우리에게 서울 클러스터 이외에 최소 하나 이상의 클러스터를 더 만들만한 역량이 있을지는 미지수입니다. 하지만, 시도는 해봐야 합니다. 그것이 세계 최고 수준의 과학적 업적을 만들어내는 길이기 때문입니다. 

단기적으로 하나의 대안은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과거 1960, 70년대에 동유럽의 일부 소국들이 노벨상 수상자들을 배출했던 시기가 있었습니다. 그 당시 이들 국가들은 자체적인 대규모 고등 연구 클러스터가 없었는데도 불구하고 이런 업적을 이뤄냈습니다. 그것은 이들이 당시 소련이라고 하는 대규모 고등연구 클러스터와 긴밀히 결합되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던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 역시 단기적으로는 타국의 성공적인 연구 클러스터와 다방면에 걸친 대규모 공동연구를 통해 이러한 업적 산출을 노려볼 수 있습니다. 가령 부산, 경남권의 연구 클러스터를 조성하고 이를 일본 중부지방이나 관서 지방의 연구 클러스터와 단단히 결합하는 것입니다. 양 클러스터 간에 대규모로 연구자를 상호 파견하고 대규모 공동연구를 실시해 보는 것이죠. 

단기적으로 큰 효과를 기대해 볼 수 있는 방법이긴 합니다만, 지리적 간격, 언어 장벽, 또 국민 감정 등을 생각해 봤을 때 그 실현 가능성은 마찬가지로 미지수이긴 합니다. 

두번째 교훈은 독자적인 연구자 충원 시스템이 필요하다는 겁니다. 

위에서 언급한 막스 플랑크 연구소의 연구 결과를 우리로서는 뼈아프게 받아들여야 합니다. 대부분의 노벨상 수상자들이 한 나라에서 박사를 받고, 연구를 하고, 노벨상을 받았습니다. 뒤집어서 생각해 보면 우리나라처럼 대부분의 대형 대학 교수들이 미국에서 박사를 받아오는 현실이 계속되는 한 노벨상 수상의 소식은 요원할지 모른다는 것입니다. 

더 중요한 것은 노벨상 수상자들은 대부분이 박사를 받고 나서 자기에게 박사를 준 연구기관에 취직하지 않았습니다. 자기를 낳아준 학교가 아니라 다른 시각과 연구 경험을 가진 연구자들이 포진하고 있는 다른 연구 클러스터로 떠난 것입니다. 

우리가 우리 스스로 복수의 연구 클러스터를 만들고 각 클러스터들이 독자적으로 박사를 배출하여 그 박사들이 다른 클러스터에 가서 교수로 취직하는 전통이 만들어질 때, 즉 우리 국내의 클러스터들이 스스로 교수를양성하고 교수들을 서로 주고 받게 될 때 우리가 노벨상을 받게 될 확률 역시 급상승할 겁니다. 

마지막으로, 우리는 엉터리 가짜 분석에 휘둘리면 안됩니다. 앞서 맨 앞에서 지적했듯이 현재 한국 사회와 언론에 횡행하고 있는 일본이 노벨상을 많이 받는 이유에 대한 분석은 대부분이 근거가 박약합니다. 잘못된 분석에서 올바른 해법이 나오지 못합니다. 

앞서 지적한 것 뿐만 아니라 현재 한국의 과학계에 대한 비판은 매우 많습니다. 몇 가지만 예를 들어볼까요? 

위계를 강조하는 도제식 연구, 교육 시스템이 혁신을 가로 막는다. 박사과정 학생들이 교수에게 너무 의존적이고 독립성이 없어서 개인의 창의성이 마비된다. 

산업 수요 위주의 연구개발 투자가 기초 연구를 질식시킨다. 연구지원을 위한 정부의 지원 시스템이 전문성이 없고, 연구에 대해 전혀 모르는 사람들에 의해 운용되고 있다. 

연구비에 대한 통제가 너무 강해서 교수들이나 대학원생들이 연구과제를 자유롭게 선정하지 못한다. 대학생들이 전공을 너무 일찍 선택하다 보니 시야가 좁고 학제적 접근을 못한다. 

중고등학교는 물론 대학에서도 너무 암기위주 교육만 시키다 보니 학생들이 창의성이 떨어진다. 학계의 풍토가 외국인 연구자들에게 폐쇄적이다. 

제가 이 비판들을 어디서 발췌해 온지 아십니까? 하하하. 바로 2000년대 초반 일본의 과학기술계를 신랄하게 비판하는 논문들에서 발췌해 온 겁니다. 

당시 일본은 국내는 물론 해외로부터도 커다란 경제 규모에도 불구하고 노벨상 수상자를 너무 적게 배출한다는 비판에 직면해 있었습니다. 

당시 일본 국내외의 비판가들은 위에 든 것과 같은 이유들을 들면서 이런 이유들 때문에 일본이 노벨상을 못 받고 있고 그래서 일본의 연구와 교육 시스템을 싹 뜯어 고쳐야 한다고 했습니다. 

그렇게 신랄하게 일본 과학계를 비판하던 그 분들은 지금 다 어디로 갔나요? 

2000년도부터 일본에서 노벨상이 쏟아져 나오면서 비판은 어느새 칭찬으로 바뀌어 버렸습니다. 2016년 10월 중국 환구시보 영문판이 내놓은 논평을 보면 아주 일본 과학계에 대한 칭찬으로 도배가 되어 있습니다. 

일본의 연구환경은 개방적이고 혁신을 장려하는 문화를 갖고 있다. 일본 학생들은 자유롭고 사고가 독립적이다. 일본은 학계의 풍토 자체가 자유로운 사고 표현에 관대하다. 일본은 전략적으로 학술연구의 우선순위 선정을 잘 하고 있다. 

일본은 서방 학술 선진국들과 인적 교류를 잘하고 있다. 일본은 기초 연구에 우선순위를 두는 데 중국은 응용연구만 하고 있다. 

이거 다 어디서 많이 듣던 얘기 아닙니까? 

그러나 사실 일본의 노벨상 수상자들의 면면을 보면, 일본 국내외의 비판가들이 그토록 신랄하게 비판하던 그 낡아 빠진 교육 시스템 하에서 교육을 받고, 혁신과 창의성을 질식시킨다는 그 잘못된 연구 시스템 속에서 수십년간 연구를 해온 분들입니다. 

지난 수십년간 일본의 교육과 연구의 체제가 근본적으로 변화했다는 말을 들어본 적이 없습니다. 이것은 일본 과학계에 대한 과거의 비판들이나 현재의 칭찬들 모두 상당수가 껍데기만 보고 뱉어내는 헛소리들일 가능성이 높다는 것입니다. 헛소리들에서 올바른 방향 설정이 나올 리는 만무합니다. 올바른 방향 설정은 오로지 올바른 현실 인식과 분석에서만 나올 수 있습니다. 

우리가 일본의 노벨상 빅뱅에 대해 부러워 할 필요도 질투할 필요도 과공할 필요도 경시할 필요도 없습니다. 노벨상을 떠나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첨단의 과학 업적을 산출할 수 있는 역량입니다. 

이를 위해 우리에게는 복수의 고등 연구 클러스터와 독자적인 연구자 충원 시스템이 필요합니다. 물론 쉽지 않습니다. 그러나 높은 과학기술 수준을 원한다면 피할 수 없는 길입니다. 

오늘도 쓰다 보니 너무 글이 길어졌네요. 왜 이리 할 말이 많은지... 여기까지 다 읽어 주신 분들께 정말 깊이 감사드립니다. 제 글을 읽어줘서 고마운 것이 아니라 저와 함께 이 어려운 문제를 같이 고민해 줘서 고맙습니다. 감사합니다.

출처 : 장부승 간사이외국어대 교수 페이스북 글  webmaster@scinews.kr

<저작권자 © 노벨사이언스,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출처 : 장부승 간사이외국어대 교수 페이스북 글의 다른기사 보기
icon인기기사
기사 댓글 0
전체보기
첫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
여백
여백
여백
Back to Top